에비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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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양산박, 2007 <에비대왕> 서울공연!
도쿄, 오사카 그리고 루마니아 Sibiu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서사비극의 대장정
재일교포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내한공연이 일본문화청의 후원으로, 오는 6월 8일부터 10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2006년 8월 거창국제연극제 초청으로 한국초연되었던 <(신주쿠양산박 版) 에비대왕>으로, 원작희곡은 2002년에 발표된 홍원기의 작품이다.
한국공연 이후에도 <에비대왕>으로 다양한 연극제에 초청받고 있는 신주쿠양산박은, 일본 순회공연에 이어 2007년 5월 현재 루마니아에 초청되어 호평 속에 공연을 마쳤으며, 6월 15일과 16일 양일엔 경기도 과천시 초청(과천 댄스 앤드 드라마 포커스)으로 과천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비극과 희망의 서사시, <에비대왕>
홍원기의 희곡은 바리데기 설화를 근간으로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그리고 희랍비극의 모티프까지 교직한 다양한 이야기의 변용을 통해 개인의 욕망과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과 통찰을 보여주며, 나아가 근대 한국의 분단현실까지도 조망하고 있다.
일본의 연극 평론가 다카하시 히로유키가, 작품이 지닌 힘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핵심을 가장 예리하게 찌르는 연극으로 <에비대왕>을 꼽았듯이, <에비대왕>은 희곡과 연출 모두에서 강렬한 에너지와 날카로운 풍자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며 정교가 분리되어 가는 혼돈기이자 우리 민족심성의 원형질이 확립되어가던 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에비대왕>은, 제왕적 군주 ‘에비’와 그의 막내딸 ‘바리데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먼 옛날, 내리 6공주를 얻은 에비대왕이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지성을 드리지만 일곱 번째 역시 딸(바리데기 공주)이 탄생하자, 강물에 띄워버리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려진 바리데기는 뱃사공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무럭무럭 자라는데, 어느 날 에비대왕에게 저승사자가 나타나, 수명이 다 되었으니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같이 갈 것을 명한다. 하지만 에비대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으니, 그 아들을 볼 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고 고집한다.
저승사자는 에비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 죽음을 유보해 주되 왕의 하루는 평민의 한 달과 같으니, 하루에 삼십 명씩 백성들을 대신 죽이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에비대왕이 아들을 볼 욕심으로 저승사자의 조건을 수락한 이후 온나라에 전염병이 돌고 사고가 빈발한다.
또한 에비대왕은 저승사자에게서, 바리데기의 원한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충직한 신하(마별사)를 불러 바리데기를 찾아오라고 명한다.
이들은 바리데기를 찾아 황천강 어귀에 도착하지만, 바리데기는 아귀병에 걸려 끊임없이 먹어대는 할미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팔아 팔도꾼에게 시집을 간다.
에비대왕은 자신의 영토를 큰딸과 작은딸에게 맡기고는, 아들을 낳아줄 여인을 찾아 나선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남편에게도 버림받으며, 자식에게까지 버림받는 여인’, 그 여인이 자신의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저승사자의 말에 따라….
신주쿠양산박의 <에비대왕>은 언어의 생동감, 음향과 무대의 웅장함, 긴박한 상황전개, 폭소를 자아내는 저승사자의 능청맞은 연기 등이 어우러져, 관객을 새로운 형식의 서사비극 속의 강력한 에너지와 감동으로 쉴 틈 없이 몰아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연극적 재미 속에 아들 선호와 부자세습이라는 봉건적 폐습에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은근히 대입하며, 질곡에 찬 근현대사와 이기적 욕망에만 탐닉하는 현실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는 것이 또한 <에비대왕>이다.
* <에비대왕>은 극단 인혁(이기도 연출)의 공연으로 2002년 서울공연예술제의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및 무대 예술상을 받았으며, 한국연극협회 선정 2002 우수공연 베스트7 수상작으로,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크로스오버? 국악의 범아시아적 도발!
이번 <에비대왕>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또다른 면은 바로 음악이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재일동포 국악인 민영치의 음악에, 신세대 해금연주자 꽃별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국악에 뿌리를 두되 전통국악의 범주를 넘어 범아시아적 음악으로 진화한 민영치의 퓨전국악은 공연 내내 라이브로 연주되며,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 나간다. 또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치고 있는 꽃별이 민영치의 음악에 미묘한 색채를 더하며, 관객에게 신선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경계와 혼융의 극단, 신주쿠양산박
1987년에 창단되어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은 신주쿠양산박이 극단대표 김수진의 연출로 <에비대왕>을 고국인 한국의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은, 연극 한편을 공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2005년, <바람의 아들>로 한국 7개 도시의 텐트 순회공연을 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바 있는 신주쿠양산박은, 이번 <에비대왕>의 공연으로 한일문화의 경계에선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한국 작가의 원작희곡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어 대사로 한일양국에서 공연을 하는, 보기 드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작품의 진폭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신주쿠양산박의 실험정신에 기반하며, ‘아시아’라는 거대 틀 안에서의 작품 활동을 통한, 새로운 예술 창작이라는 목표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